러시아에 온지 벌써 2개월이 되었다.(11.12.16~)
갑작스럽게 또는 갑작스럽지 않게 이 곳에 오게 되었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이..
앞으로 내가 어떤 길로 어떻게 나아갈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크게보면 아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자세한 것은 전혀 알 수 없어 순간순간 기도하며 오직 그분만 의지함을 훈련하고
큰 시야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그 크신 사랑으로 살리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알게하신다는 것이다.
이 넘치는 사랑은 차고 넘치는 열정으로 생명의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할 것이다.
그 꺼지지 않는 불 같은 눈이 나와 우리 가정을 향하신다.
또 우리나라와 민족과 세상 열방과 땅끝까지 향하신다.
두렵고 떨리지만 이 세상 가운데 그 분 안에서만 우리는 쉴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그저 막막.
이 큰 스케일을 나는 도무지 감당 할 수가 없지만,,
지금이라도 여기 공간에서 조금이나마 정리해봐야지 싶다.
한국에서의 일을 급히 마무리 하느라.. (교회의 섬김과 일대일양육과.. 등등 딱 맞춰서 마무리하고 올 수 있었다. 그러나 NAUH의 인수인계는 잘 못하고..)
기초적인 러시아어와 관련 정보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채..(나의 틀, 나의 생각 전혀 내려 놓아야 했던.)
정말 생존에 필요한 먹을 것들과 방한용 옷들만 챙겨서 이 곳에 오게되었다.
나와 또 다른 2분과 함께 한 명당 20kg 씩 총 60kg 을 들고 올 수 있는데 정확히 60kg 이 오바되어서..키로당 8000원씩 48만원 벌금을 내고
그 짐들을 이 곳으로 공수해 왔다. (2분은 5일만에 돌아가시고 지난 2주전에 다시 다녀가심.)
정작 옷은 젤 따뜻한 조합으로 외투 한벌정도만 필요했고,, 그리고 실내옷 두세트정도. 농장에서는 작업복을 입으니..
먹을 것들도 대부분 이 곳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들을 챙겨왔었다.
라면 40개는 이미 농장 사람들에게 신년 연휴때 나눠주었고,
나머지 깻잎과 김과 라면은 이곳에서 매일 나와 함께 하는 고려인 통역분들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서해로 중국을 거쳐 러시아 상공을 가는 2시간 30분의 일정동안 깨어 기도하며 쉼 가운데 주님의 뜻을 구했다.
어두운 밤 얼어붙은 블라디보스톡 공항을 도착.
우리를 마중나온 젊은 청년이 차 안에서 선정적인 러시아 뮤직비디오를 틀어 놓고, 눈으로 덮인 길을 시속 140 ~150km로 달리는 가운데
그렇게 정말 우리의 목숨은 주님께 있음을 진심 인정하며 맡기고 러시아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러시아어도 모르고 돼지 농장에서 직접 일하며 배운 경험도 많지 않은 초보 수의사인 내가.
러시아 농장의 관리 책임자로 오게 된 것이다.
모돈 1000두 규모이니 크기도 큰 편이고 종돈장 개념의 1site 토탈 양돈장이라 볼 수 있다.
내 나름대로는 이렇게 오게 된 것은
우리 가정이 더욱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훈련의 장소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후의 내가 가야할 곳에 대한 연습 장소로 부르셧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았을 때, 과연 이 곳보다 더 적합한 곳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이 생각을 아내와 함께 나누고 한 마음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이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가 한 일은 적지만,,
이곳에서 매일새벽의 설교 말씀 가운데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 길을 아무런 말 없이 따랐던 사라의 순종을 우리 가정이 알게 하셨다.
지금도 그렇게 함께 해주는 아내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여기 오기 전에도 우리 둘이 만나게 하시고, 결혼으로 한 가정을 이루게 인도하심이 정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아내의 고백에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여기서도 그런 고백 가운데 매일 채워주시는 사랑과 기쁨 가운데 나아가게 하심이 정말 주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이 곳의 1월 날씨는 최저 기온이 영하 30도~ 25도 였고, 요즘은 영하 20도 즘이어서 약간 따뜻해진 느낌이 날 정도이다.
위도 상으로는 독도즘 되어서 한국과 시차가 없지만, 여기 시간이 2시간 정도 빠르다.
그래서 나는 7시 15분에 집앞에서 농장 버스를 타고 9시까지 출근을 하지만,
극동방송의 5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이를 닦기 시작하고 바로 출근을 하게 된다.
1시간 45분의 시간을 버스 기사의 담배 연기를 맡으며 알아 들을 수 없는 러시아 노래들과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그렇게 막막히 출 퇴근을 하게 된다.
내가 사는 집은 스파스크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해 있고 농장은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질료노돌스코예 라는 마을에 있다.
스파스크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지나는 길목에 있으며, 그래서 매일 모스크바를 향하는 기차길 열차들을 볼 수 가 있다.
예전부터 이곳 연해주의 농업 중심지였고 또한 시멘트 공장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 민족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농장에는 30 ~40여명의 러시아 사람, 우즈벡키스탄 사람, 타지키스탄 사람, 한국(조선, 고려)사람이 함께 한다.
이들과 함께 이 곳 러시아에서 모범이 될 양돈장을 만들어 갈 생각으로 이 곳에 왔지만,,
상황은 그리 쉽지많은 않다.
이들의 삶에 내가 들어가 내 삶이 되고,,
함께 나누어지는 소소한 일상 가운데, 아픔과 충돌의 순간들에 나도 함께 힘들어하고 아파하였지만
그 가운데 주님 주신 희망과 기쁨의 순간도 날마다 함께 했다.
다행히 이 곳에 사는 고려사람인 이골형을 만나고 통역 도움을 받으며 지금까지 나름 잘 해온 것 같다.
또 가끔 사장님과 함께 와서 통역에 도움을 주시는 조선족분도 계신다.
그리고 교육자료를 번역해 주시는 한국에서 오신 장선생님도 계신다.
마지막으로 우리 농장 팀에 합류한 주님 보내주신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앞으로 이 농장에서 우리 나라와 러시아의 새로운 희망과 꿈을 노래 할 수 있기를 꿈꾼다.
처음부터 예상은 했지만 글이 장황하고 아리송하게 되었다.
이 글의 일관성을 위해 이 쯤에서 마치고 다음부터는 조금은 소소한 러시아의 일상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잠시 3월 9일 한국에 들어가 10일~ 14일 정도 있을 예정입니다.
만약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그 기간 동안에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꿈을 나누고,
오히려 저희 부부를 기도로 후원해 주실 수 있으면 더욱 좋겠네요.^^
사실 맨 위의 사진은 제가 찍은 사진을 아내가 보정하였는데, 벌써 우린 하나가 되었나 봅니다.ㅎㅎㅎ
Sigma DP2
궁금했던 이야기 들으니 속이 후련하기도.
또 러시아 생활에 그 느낌과 순간과 분위기 하루하루가 그대로 그려지네요.
지난번 이나 언니 글에 러시아에 대한 제 로망을 흥분해서 장황하게 쓰다 다 날려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시 러시아 소식 들으니 마음이. 지금 두분 계신 곳 처럼 차지만 묘한 색깔들이 미묘하게 감도는.
축복합니다 그곳에서 함께하실 그분을 찬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