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란 책이 나왔을 때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는 내게 그 책을 읽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인터뷰 과정에서 옥 목사는 불쑥 그 질문을 던졌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꼭 읽어봐야 할 거예요.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도 읽어야 하고요”
그 책의 저자는 옥 목사의 첫째 아들인 옥성호씨.
옥 목사는 내놓고 하지 않았지만 내게 자식 자랑을 했다. “성호가 하는 이야기가 한국 교회에 널리 퍼지기 바래요. 솔직히 너무나 한국교회가 한 쪽으로만 너무 기울었습니다. 균형을 잡는데 필요한 책입니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다.
‘아, 옥 목사님도 아버지구나. 자식을 대견해 하는...’
옥성호씨와 17일 전화통화를 했다. 하루 전 그는 본보 백상현 기자에게 메일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연락했다.
그는 한국 교회에 아버지 옥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님이 무엇을 추구하셨는지, 그 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려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옥 목사는 병상에서 옥성호씨의 최근 작 ‘엔터테인먼트에 물들은 부족한 기독교’를 비서의 구술을 통해서 들었다고 한다. 들으면서 무척 흐뭇해했다고 성호씨는 전했다. “아버지가 저의 책 내용에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뻤습니다.”
그는 이미 글을 써 놓았다면서 30분내에 보내겠다고 했다.
이른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니 옥성호씨의 메일이 도착했다.
아들이 본 아버지, 날 것 그대로의 옥한흠 목사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모두가 옥 목사가 벌떡 일어나길 소망하고 중보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 정황으로 볼 때, 어쩌면 이제 우리 모두가 그를 떠나보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존재와 부재를 떠나 옥 목사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그 메시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기 그 메시지가 있다. 이태형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부 부장 thlee@kmib.co.kr
어느 주일 낮
제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주일 낮이었습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응접실에 있던 내게 말을 건 것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왜 이런거지?”
아버지가 내뱉은 의문문의 문장에 대답할지 말아야 할지를 잠시 망설였던 저는 조용히 되물었습니다.
“아빠, 뭐가요?”
아마도 그 날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었나 봅니다. 비록 그 상대가 날마다 공부는 뒷전에 내팽개치고 놀기에 바쁜 아들이었을망정 말입니다.
“어…그게 말이야…”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성호야 내가 한참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구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사람들을 교회에 많이 보내주시는지 말이야. 오늘 주일 예배 숫자가 5천명이 넘었어. 오늘 예배 후 차를 타는 대신 집까지 천천히 걸어오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도 정말 알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나 같은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이렇게 쏟아주시는 그 뜻을 도통 알 수가 없어.”
'아니,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거지…별 이상한 걸 가지고 다 고민이네….'
아버지의 불평 아닌 불평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 저는 내려놓았던 사과를 다시 집으며 보고 있던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든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단 몇 십 초에 불과했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제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 날 제가 느꼈던 바로 그 ‘이상함’ 때문입니다. 좋아해야 할 일을 놓고 좋아하는 대신 고민하고 당황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준 의아함 때문입니다. 비록 그 날 이후 아버지는 늘어나는 사람들이 주는 고민을 우리 가족들에게 드러내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론
아마도 많은 분들은 아직도 3년 전 상암 운동장에서 열린 평양 부흥 100주년 기념 예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날 설교에서 절규에 가까운 회개의 메시지를 내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혹자는 도대체 옥한흠 목사는 뭘 그렇게 잘못한게 많아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해도 모자란 부흥 100주년에 저런 찬물 끼얹는 설교를 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날 하나님께서 100년 전 부어주신 그 부흥의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 대신 하나님 앞에 회개의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만이 갖고 있던 바로 이 오랜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는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그만큼 아버지에게 '교회론'은 사랑의교회를 목회하는 내내 생명과도 같이 붙잡고 있던 가치였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론'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목회자와 교회가 사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교회론이 왜 생명과 같으냐고 물으면 목회가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들을 영적으로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이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목회자는 진정한 목회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목회자의 생명을 결정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교회론이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을 때 그 사실은 아버지에게 말못할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현실이 충돌할 때 고민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토록 붙잡고 있던 그의 교회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제가 관심을 갖는 교회론은 어떤 영역이나 분야가 아니고, 교회의 본질과 연결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즉, 교회의 주체가 누군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인가 아니면 평신도인가?저는 교회의 주체가 평신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했고, 교회 주체인 평신도를 위해 목회자가 어떤 사역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회자로서 어떻게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교회론의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전통 목회는 평신도가 동원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신도를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주체, 동역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붙잡은 교회론의 핵심은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주체에 대한 재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어떻게 볼 때 목회자를 위해 존재했다면 이제 교회는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를 위해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 의지해 그리스도를 닮은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목사와 교사를 교회에 보내셨으며 이제 교회는 기존의 예배 공동체와 선교 공동체로서의 정체성 외에 훈련 공동체로서의 또 하나의 얼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평신도를 명실상부한 교회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훈련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교회론이 꽃피기 위해 필연적으로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제자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도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교회의 주체이자 주인이 평신도라는 사실과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것이 왜 서로 충돌할까요? 도리어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교회의 주체되는 평신도들이 늘어나니까 말입니다. 주체들이 늘어나면 교회도 더 강성해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교회론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인 제자도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교회론을 실현하는 실천적 방안으로 제자도를 정리하며 그 내용의 핵심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한 사람 철학
정말로 아버지는 한 사람을 붙잡고 사역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래 전 성도교회 대학부를 맡았을 때에도 당시 대학부에 남아있던 단 한 명의 학생, 지금의 방선기 목사님을 붙잡고 대학부를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시작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이 볼 때 무식하고 답답한 방식인 소그룹 훈련에 매달려 매일을 씨름했습니다. 밤마다 제자훈련에 치중하다보니 새벽에 일어날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많은 분들은 새벽기도를 인도하지 않는 이상한 목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커지며 더 이상 소그룹을 직접 인도할 수 없게된 이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제자훈련 교재 집필에 진액을 쏟았습니다. 아버지에게 한 사람은 교회 전체였고 교회는 바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2. 섬기는 리더쉽
교회의 주체를 평신도로 이해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그의 교회론을 근거할 때 아버지에게 목사가 평신도를 섬겨야 하는 존재임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혹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섬길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 같은 주인의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생각할 때 가르치는 자가 사실상은 섬기고 있다는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그가 지향하는 예수님을 닮은 제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남을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섬김의 모델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비롯한 목회자들에게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동시에 성도의 종이다’라는 신념 아래 그는 자주 '이끌면서 섬기고 섬기며 이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이며 주체된 그들을 바로 섬기며 이끌기 위해 목회자는 한 사람 철학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아버지에게 너무도 커버린 교회는 한 사람 철학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구조, 제대로 평신도를 섬기기 힘든 구조의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 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교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2만 3천명, 전체 등록 교인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지금 사랑의 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아버지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내가 내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한 영혼에 최선을 다해 집중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가 과연 이렇게 클 수 있었을까? 아니, 결론적으로 이렇게 커진 상태에서 이제 더 이상 한 사람 철학을 바탕으로 한 나의 교회론 자체가 아예 가능이나 한 얘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