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쓴 맛.

by toguz posted Jul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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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순간의 망각이.

 

이렇게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구나..

 

나비효과. 둑에서 빠져나온 작은 돌.

 

이것들로 과연 설명이나 가능할까?

 

어찌보면 실수가 주된 포커스는 아니다.

 

무엇에 지금 집중하면 좋을까?..

 

 

 

쓰다.

 

안 쓴 척 해보려 해도.. 이 세상은 쓰다.

 

그것이 창세부터 시작 된 역사임에도..

 

내 인생에서 계속 되어 온 삶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꿈높현시의 세상이라 한탄해보고.. 그러한 일상에 몸 맞추려 해도..

 

이젠 그렇게만 생각하고 맞출 수 없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하려는 내 자아를 깨달아 지는 시간이.. 나에게 지독하게 쓰다.

 

 

 

참 쓴 것은 싫다. 난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달달함을 느끼며 즐거워 하다가도 곧 씁쓸함이 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얼마정도 나이가 들어야 쓴 것이 익숙해 질까?

 

쓴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란 정말 가능할까?

 

그 익숙해짐이란 또 어찌나 안일하고 나약한 한 인간의 헛된 소망이라니..

 

 

 

정말 이것은 죽음으로만 끝낼 수 있는 한 인간의 헛된 꿈일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나도 어릴 적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으니..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생물이 되어 뼈와 살을 지니고 뜨거운 피가 흐르며 움직이다가,,

 

어느순간 그 명이 다하여 싸늘하게 식어버린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고깃덩어리가 되어 썩어져 흙이 되어지는 것이 죽음인가.

 

물론 이렇게 단순히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의 사고를 벗어나 제대로 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이것만 알 수 있어도 우리의 인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것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알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충분히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사이에도 그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안다.

 

우리를 안전하게 해 줄 수 있는 장치와 도구들을 모은다. 마치 게임과 같다.

 

가족들이 있다. 친구가 있다. 조금 크면 돈도 있어야 한다. 돈을 벌고 유지할 지식과 직장이 있어야 한다. 권력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이러한 것으로 우리의 문제. 죽음과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것들로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더욱 큰 상실감을 느끼고 지난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결국 또한 많은 이들이 그 삶과 죽음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없이..

 

육체적인 죽음을 택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너무나 슬픈 일이다. 나도 그랬을 뻔한 적이 있었으니..

 

 

 

그렇다면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아는 것이 가능할까?

 

가족들 같은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기르던 반려동물이 죽거나, 건강하던 친구가 갑자기 죽거나,, 유명인이 죽는다..

 

그것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자신의 자아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보통 심각한 생각과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좀 쓰다. 경우에 따라서는 많이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급히 망각이란 거짓 핑계로 그 모든 쓴 것을 밀어내고 단 맛을 찾아간다.

 

아니면 간혹가다 그 쓴 맛에 자신도 급격히 죽음으로 향하게 될 수도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어느정도 제대로 된 인식없이 그 어떠한 것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또 다른 경우는

 

그 죽음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말하는 고귀한 가치를 자신의 인생의 모습에 포장한다.

 

그리고는 그 죽음까지도 고귀한 가치를 향한 것이었음을 나타내고자 한다.

 

조금 고상해 보인다. 나도 세상 가운데 그렇게 보여지고 싶다.

 

정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간단한 것인가?

 

내 이름이 알려짐을 위해 애쓰고 결국 그렇게 될 삶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인생의 어떠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할까? 그 쓴 맛을 느끼지 않고 달콤한 인생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많은 미디어들은 이런 헛 된 꿈을 조장하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성경'이 삶과 죽음에 대해 가장 자세하고 깊이있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죽음의 위협과 아픔 앞에서 성경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안다.

 

그것에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가? 어떤 이야기가 있는가?

 

내가 이것을 다 설명할만한 사람이 못 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히 얘기를 하자면..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자세히 다양한 구조와 내용들로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챤들에게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있고,

그것이 예수가 이 땅에 오기 전에 쓰여진 내용과 그 후에 쓰여진 내용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구약이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과, 신약이 오신 예수님의 생애와 그 죽음과 부활의 삶의 증거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세상 사람들도 성경이 예수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라는 것을 대부분 안다.

(물론 예수에 대해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한국 사람도 있다. 노방전도 하다가 강남에서 만난 빌딩관리자 아저씨. 많은 세상사람들도..)

 

그렇다면 공통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기록된 책이 성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예수님도 또한 자신이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으며, 기록된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을 때..

 

성경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고 설명하고 있는 지에 대한 여러분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말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은 우리 모두가 겪는 것이고 원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최소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 수 있으며 알 수 없는 것인지를 인식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고 온전히 깨닫게 되는 데까지 여러분이 이르게 되길 소망한다.

 

왜냐면..

 

그 누구보다도 부족하고 교만하고 추악하고 만삭되지 않아 태어난 자 같은 나이지만..

 

그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지금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그 진리를 알아가는 탐구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은 얘기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내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정말 죽으면 이 인생의 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적인 죽음. 목숨 잃음이 아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진정한 나로 온전히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이것은 성경의 논리에 맞다.

 

어떠한 두려움이나 죄로 인한 양심의 찔림이나 쓴 맛이 없이 온전히 자유한 예수 닮은 자로 사는 삶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

 

내 삶과 죽음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통해 생각해 보고..

 

성경의 말씀을 잠시나마 믿게 되었을 때, 이러한 기적 같은 놀라운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자아가 죽지 않으면 내 안에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날마다 죽어야 한다.

 

매일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죽고 사는 가운데 부활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매일 죽고 사는 경험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으로 행하지도 못하고, 다시 죄의 문제로 인생 가운데 쓰디쓴 맛을 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나는 성경을 본다. 그 말씀 가운데 내 죄 된 육체의 본성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다시 그 죄를 간절히 회개하며 주님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읽는 것을 힘들어 한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으면 내 죄가 깨달아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기가 힘들다.

 

외면하고 싶고, 피하고 싶고, 숨고 싶은 욕구가 앞선다. 나도 정말 그렇다.

 

하지만. 그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사랑이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를 그 저주받은 죽음의 형장에 내어 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다시 하나님을 찾고 우리의 본 모습이 예수님을 통해 회복되길 원하신다.

 

우리의 죄와 한계를 깨달을 때..

 

인생은 참으로 쓰다.

 

하지만 그 쓴 맛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를 구원할 진리를 찾게 되고..

 

그 진리의 빛 앞에 우리의 더러운 죄가 드러나 창조자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 분이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의 삶과 죽음 그것의 깊음까지도 다 아신다.

 

또한 그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해 성경으로 말씀하신다. 또한 살아있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그 쓴 맛을 느끼게 될 때, 말씀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두려워 피하거나 미루거나 망각하여 합리화하며 넘길 것이 아니라..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안으로 돌이키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그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고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까지도 몰아내는 진리의 빛 가운데 달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인생의 쓴 맛 가운데서도 우리가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는 진리가 성경에 있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이 다크 초콜릿과 같이 처음엔 쓸 수도 있으나..

 

그 인생의 씁쓸함, 깊은 곳에 감춰진 뜻. 하나님 사랑의 뜻을 발견하여 달콤하게 다가오는 오늘이길 소망한다.

 

 

 

그래도 성경을 읽어 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분들에게..

 

CCM 한 곡을 함께 듣기 원합니다!^^

 

"God So Loved The World - 레위지파"  앨범명:  Levites Awakening 20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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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llei 35TE  fuji reala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