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할머니는 한 1년전부터 몸이 안좋았다. 기력이 쇠하고 잘먹지 못하고. 나이는 그리 안많으신데.
75세의 연세로. 2009년 말 돌아가셨다..
많이 못찾아 뵌것이 사실이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이 되어 엄마랑 밖에서 점심을 먹고있었다. 자주 할머니는 생사를 넘나드셨다. 간과했던것이다.
그날도 몸이 안좋고 위독하시다고했다. 전에도 이런고비를 넘기셨기때문에 그날 회사끝나고 부산내려가자고 엄마랑
얘기하고 있었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많이 위독하시다고....
곧이어 정말 안좋다고. 엄마는 당황하셨다. 그리곤...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엄마의 눈물 당황. 나는 어쩔줄 몰랐다.
시킨 밥은 거의 손도 안대고 바로 뛰쳐나와 가방과 옷을 챙겨서 부리나케 나왔다.
검은 옷을 챙겨들고 택시타고 서울역으로 바로 출발. 언니를 픽업해서 서울역KTX를 탔다. 서울-> 구포행.
영화가 상영하는 칸이 있어서 '더문'이라는 이상한영화를 보며 부산에 도착. 기분이 이상하고 싱숭생숭.
우리 외가는 불교이거나 거의 무교. 할머니는 절에 가끔 가셨었다. 그래서 장례도 절식으로... 부산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불교식이라고한다
부산내려가니 벌써. 이렇게.
윤재오빠네와는 달리 정말 너무 썰렁하고 슬픈 장례식. 우리할머니는 평생 고생하시고 혼자 5남매를 키워내셨다.
정말 막상가니 눈물이 안나왔다. 생각할수록 너무너무 안타깝고 하나님모르고 가신것이 내탓인것같아 슬프다...
엄마친구들이 많이 오셨다. 할머니는 외로우셨던것같다. 친구도 별로 없이....
교회에서 하는 장례를 봐오다가 이런분위기로 오니 너무 가라앉고 비통하고. 슬픈기운만 가득.
이모 삼촌들은 누가 더 잘못했나를 따지고 그동안 쌓였던것을 얘기하는 자리가 되버렸다.
우리는 손주가 별로없다. 손녀3, 손자1. 그중에서 언니와 나 손녀둘만 왔다. 손자는 2주전 군대를 갔고, 손녀 한명은 미국에 있다.
언니랑 내가 영정사진도 들고 제일 앞서서 그 장례를 이끌어갔다. 그러나 우리앞에서는 스님이 목탁을 치고 종을 울리고.ㅠ
평생 들을 목탁소리 다들었다. 왠 절차와 절하는 것이 그리 많던 지. 어휴....다 형식일 뿐이었다.
화장을 하고 절에 안치시키고 모든것이 혼란스럽고 정신없었다..
처음보는 시신과. 입관. 발인. 너무 생소하고 특이한 경험이었다.
만약 하나님을 알았다면 이렇게 슬프고 안타까울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2009년 마지막 주였다. 29~31까지 부산에 있었고
서울오자마자 송구영신을 드렸다. 너무너무 슬프고 그동안 억눌린 눈물이 나왔다.
옥한흠목사님의 설교. 네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사실 장례식을 다녀온후 나에게는 굉장히 큰짐이 있었는데 나에게 하는 말씀인것같았다. 그래도 아직 못내려놓겠다..
교회식의 장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점점 날이 갈수록 슬프고 속상하다. 그러나 이제 내려놓아야지.. 점점..
우리가족을 위해 우리친척들을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모두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복음화가 하루속히 와서 이런 슬픈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by natura ns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나야. 넘 수고 많았어. 너의 짐,, 우리의 짐 여호와께 다 맡기고. 우리 다시 기쁨으로 나아가자!!
기쁨의 이유를 찾고 기억하자. 사랑의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니~
그 사랑 믿고 의지하며 2010 년 다시 새롭게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