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먹어 9시간을 밤버스 타고 가려니 역시.. 보통 힘든게 아니었다. 다리뻗고 잔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도 알법했다.
그리고.. 이미 런던에서부터 좌절된 영어는 에딘버러행 버스를 타면서 더욱 심난해졌다.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들이 영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코틀랜드(에딘버러) 사람들은 잉글랜드(런던)사람들하고 이름만 같은 영국이지 사이는 거의 우리나라와 일본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그 관계에는 크게 관심 없었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스코티쉬들이 잉글리쉬들과 마찬가지로 또다른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영어도 많구나..
그렇게 아침에 버스스테이션에 내려 나는 못뻗었던 다리를 뻗고 버스역내 의자에서 다시 잠을 청했다. 계속해서 자는 얘기군.. 서울역이었으면 못그랬겠지만 누가 나를 알랴..
혜영언니의 친구 향숙언니(이후 우리를 식사로 사육함)가 우리를 데리러 나왔고 나는 2주여행온거 맞냐는 욕을 먹으며 4달 선교훈련 들어가는 혜영언니가방보다 큰 가방을 낑낑거리며 에딘버러 니콜슨 스트리트 향숙(이하 숙)언니네 집에 왔다.
에딘버러는 런던보다 많이 추웠다. 버스에서 눈을 떠 첨 에딘버러를 접했을 때는 확실치 않지만 런던보다 약간은 우울한 분위기였다. 이번에 알게 된건데 의외로 내가 우울한 곳과 잘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하게 영향을 받으므로. 하지만 내가 간 기간이 그나마 에딘버러 사계절중에 심하게 날씨가 좋은 때라고 하셨다. 시내로 나가보았다..
지나가다가 인상적이었던 건물. 에딘버러 시내에서는 거건물 보호를 위해 창문하나도 바꾸려면 허가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프라이드만 높을 뿐 아니라 관리도 철저한 듯 했다. 이건물의 용도는 모르겠음. 예전에는 교회였다가 지금은 카페등이나 어학원으로 바뀐 교회건물도 많았다. 그리 즐겁지 않은 이야기. 이건물은 교회는 아니었을 듯.
정말 호텔 앞에는 아직도 이렇게 제대로 치마 입으신 아저씨들이 계셨다. 거의 포즈 취하시는것이 배우들 수준.
공원의 울창한 나무사이에 보이는 내셔날 갤러리
공원 뒤로 보이는 에딘버러 캐슬
우울한 첫느낌과는 다르게 조금만 시내로 나가보니 에딘버러는 밝고 아름다웠다. 이렇게 도심 한가운데 울창한 숲과 산, 내셔날 갤러리가 있고 뒤에는 유명한 에딘버러 캐슬이 있었다.
이상시레 공원에서 아이들과 젊은 부부 가족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예뻐보여서 몰래 찍음(내카메라 줌은 확실하다.
책 읽는 사람들도 많고.. 평온한 분위기...
사진이 많이 어두운거는 에딘버러의 우울함이 묻어나서일거야..절대 내 사진 기술때문이 아닐것이야.. 그날 참 밝았는뎅.
공원앞에는 이렇게 무서운 놀이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좋다고 참 즐거워 하더라..
내가 잠시지만 묵게 될 휘오나의 집으로 향했다.(이후로는 절대 걸어가지 않았다. 장난 아니게 다리 아팠음)
숙언니네서 휘오나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던 홀리루드 힐..오기전에 한번 올라가려다 은근 높아서 중간에서 포기..
힐 밑에는 이런 호수도 있었다.
영국 전지역에서 백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여왕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백조 다리마다 태그(tag)가 붙어있었다. 일련번호라나..여왕에게 잘보이기 위해서인지(나다운 발상) 아이부터 어른까지 식빵을 사와서 백조를 사육하는 분위기였다.. 백조팔자 상팔자 in UK.
아..나는 요즘 애들이 좋아.
내가 묵게된 휘오나네집 내 침대. 따뜻한 느낌의 집과 쇼파를 개조해서 만들어놓은 내 침대에 감동.. 더블 침대인 것이 약간 심난하였으나 당장 그날부터 대(大)자로 뻗어 잠. 우리집에는 내 침대가 없거든.
감사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