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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담아두기

프랑스 문화의 다양성과 샤걀

2004.Nov.05





학기 초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르크 샤갈의 회고전에 다녀왔다. ‘마티스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뛰어난 색채화가’로 평가 받는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전시회 자체도 규모 면에서나 퀼리티 면에서 뛰어나다는 이야기에 기대가 컸다. 120여 점이나 되는 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유화의 깊고 묵직한 아름다움, 석판화의 산뜻하고 감미로운 느낌.. 색채의 마술사답게 그의 색은 현란했고, 환상적이었다. 밝고 긍정적이었고, funny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림의 이미지들(행상인, 곡예사, 천사, 악사, 연인, 말, 당나귀, 소, 닭, 염소, 물고기, 괘종시계, 바이올린, 꽃, 에펠탑 등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을 통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샤갈은 첫 페이지에 있는 <에펠탑의 신랑신부>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 에펠탑이란 모티브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원을 그린 풍경화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 국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그에게 끼친 영향(그리고 그 반대 역시)이 매우 크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수업시간에 배운 프랑스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력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프랑스 문화의 다양성과 샤갈’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레포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문화, 예술의 나라로 대표되는 프랑스.. 프랑스만큼 문화에 대한 애착과 국가적 개발이나 발전 그리고 보급이 세계적으로 앞선 나라는 없다고 한다.  이렇게 프랑스가 문화나 예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로 생각되는 이유 중의 하나로 문화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를 들 수 있다. 역사가인 조르주 뒤비는 “프랑스를 위대한 문화의 나라로 만든 것은 강력한 군주국가 덕” 이라고 말할 만큼 프랑스 역대 지도자들은 문화예술을 장려하고 육성하는 것이 국부의 원천이 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고, 여전히 문화의 독자성의 유지와 문화 정책이 세계적으로 선구가 되고 있다.

처음부터 프랑스 문화가 세계의 선두에 있지는 않았다. 문화의 기저가 된 고대 문화에,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문화를 흡수하여 조합 문화의 틀을 만듦으로써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특히 프랑수아 1세와 루이 14세 같은 예술 애호가 지도자들이 예술 진흥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힘을 기울이게 됨으로써 그러한 발전이 가능했다. 구체적인 예로 프랑스 문화의 기틀을 마련한 프랑수아 1세를 살펴보면, 그는 학문과 예술을 진심으로 후원했던 첫 번째 군주로, 이탈리아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왕실 화가로 초대하여 화가, 건축가, 공학자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후원하였고(다빈치가 프랑스로 올 때 <모나리자>, <성 세례요한>, <성녀 안나> 등의 대작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 , 더 나아가 르네상스기 발전된 이탈리아 문화를 흡수함으로써 프랑스의 독자적인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렇듯 문화대국 프랑스의 힘은 내부 문화의 다양성과 외부 문화에 대한 포용력에 있다.  이국적 문화요소에 대해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하여 프랑스 문화로 통합함으로써 자국의 문화를 다양화하고 문화적 경쟁력을 제고하였던 것이다. 또한 국가 정책이 문화를 주력할 뿐 아니라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에 대한 노력으로 20세기, 재능 있는 외국 화가들에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는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적이 다른 피카소(에스파냐), 고흐(네덜란드), 쿤데라(체코), 샤갈(러시아) 등의 거장 들이 프랑스 내에서 활동하며 세계 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프랑스는 19세기,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문화의 발전이나 창조, 향유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가 인접 국가들의 우수한 문화를 흡수해 자신의 문화로 발전시켜 개방했듯이 파리를 통해 프랑스의 발전된 문화가 발산됨으로써 세계 예술인들이 그 곳으로 모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모인 외국인 화가들을 에콜 드 파리(파리파)라고 한다. 대표적 화가들은 모딜리아니(이탈리아), 파스킨(불가리아), 샤갈(러시아), 키슬링(폴란드), 수틴(리투아니아), 고틀리브(폴란드), 자크(폴란드), 민싱(우크라이나), 반드(리투아니아) 등이다. 이들은 각기 자기들의 예술의 형성기에 파리에 이주하여 몽마르트르나 몽파르나스에 거주하면서 근대 프랑스 미술에 접촉하여 그 분위기와 자극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프랑스에서 예술적인 영감과 자유로운 표현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샤걀을 비롯한 많은 재능 있는 화가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에콜 드 파리 중에서도 마르크 샤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의 비테프스크에서 출생했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미술학교에 다닌 후, 1910년 파리로 나와 아틀리에 '라 뤼슈'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큐비즘기법을 익힌다. 1911년 앙데팡당전(展)에 첫 출품, 독특하고 환상적이며 특이한 화풍으로 전위파화가와 시인들을 놀라게 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11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성공한 후 그해 결혼을 위해 일시 귀국하였으나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잇달아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모국에 머물면서 미술단체의 요직을 맡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맞지 않아 1923년에 파리로 돌아왔다. 이때부터는 많은 유화, 판화를 제작하여 에콜 드 파리의 유력한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고, 환상적인 작풍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가 점차 격화되자 1941년 도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에서 지냈다가 1947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1950년부터는 남프랑스의 방스에 영주의 터전을 잡으며 활동한다.


그의 생에 있어서 특히 1910년 그가 파리에 도착해서 1915년 개인전을 위해 모스크바로 가기 전까지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그의 작품세계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친다. 루브르 미술관에서 옛날 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할 기회를 통해 미학의 틀을 이룰 수 있었고, 베르냉, 뒤랑 뤼엘,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작품을 감상하고, 인상파들과 드동, 세잔, 고갱 등 당대의 화가들의 빛과 공간에 대한 탐구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야수파의 격렬한 색채, 근본적인 것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큐비스트의 소망, 미래파의 폭탄 선언, 신비주의의 탄생 등의 미술의 새로운 흐름 속에 자신의 시각과 사상을 새롭게 가다듬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드디어 눈부신 색체의 마술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예술적으로 큰 영감과 발전을 준 것뿐 아니라 행복한 결혼생활의 추억이 맞물려 파리는 샤갈의 마음에 제2의 조국으로써 자리 잡게 된다. "파리는 내 마음이 반사된 모습이다. 나는 나만의 독자적인 존재이기보다는 파리와 하나가 되고 싶다"라는 말에서 그가 가진 파리에 대한 애정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위에 보이는 작품인 <창 밖으로 보이는 파리>를 비롯해서 <에펠탑(철로 만든 오벨리스크)>,<에펠탑의 신랑신부>,<파리에게 경의를 표함>,<파리>등 많은 작품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자유와 사랑의 빛깔로 비춰진 파리를 소재로 그려지고 있다. (파리 뿐 아니라 1923년에서 1938년 사이에 프랑스 곳곳을 여행하며 프랑스 전원 풍경을 밝고 경쾌하고, 평화롭게 그려낸다)


“나는 러시아에서 나의 것들을 가져왔고, 파리는 그것들에 빛을 비춰주었다” 라는 샤갈의 고백은 이 레포트 주제와 정말 잘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그의 말이 형상화된 작품이 바로 위에 보이는<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라고 여겨진다. 그림 구석구석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파리 시내가 내다보이는 창문 앞에 샤갈로 여겨지는 화가가 자리잡고 있다. 이 화가는 머리카락을 멋있게 손질하고, 가슴에는 꽃을 꽂고, 수를 놓은 넥타이를 맨 멋진 신사 차림을 하고 있다. 그는 7개의 손가락(7개의 손가락은 히브리어로 ‘손이 빠른’, ‘열심히 일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으로 그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그가 자신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은 <러시아에게, 당나귀에게, 그리고 타인들에게>이다. 한편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실내의 오른쪽 벽에는 샤갈이 회상하고 있는 러시아의 고향마을 비테프스크의 풍경이 구름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제일 위를 자세히 보면 화가의 머리 위에 히브리어로 '파리'와 '러시아'라고 쓰고는 이를 희미하게 처리해 놓았다.  이것은 그가 이 세 문화권(러시아, 프랑스, 유대 전통)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러시아와 유대 전통 문화 요소들이 프랑스 문화와 통합됨으로써 샤갈의 독특하고 뛰어난 예술 세계가 탄생하게 된 것이고, 다시 프랑스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무가 물을 필요로 하듯 내 예술은 파리를 필요로 한다”는 샤갈의 말처럼 프랑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국적을 초월한 예술인들에게 예술적인 영감과 자유로운 표현의 장을 제공해왔다. 프랑스의 내부 문화의 다양성과 외부 문화에 대한 포용력에서 비롯된 프랑스 문화의 발전은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문화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국가 정책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민족의 문화를 흡수하여 독자적인 문화로서 발달시켜 세계에 보급해왔고, 따라서 다른 나라들은 프랑스 문화를 알게 되고, 우수한 문화를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더욱 더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정부가 오래 전부터 문화의 보호, 창조, 전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고, 어떤 나라도 문화유산의 보호와 예술창작활동 지원, 문화교육, 문화의 보급과 전파를 위해 이처럼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일관성을 가져왔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 같다.

이점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정부는 문화는 시장의 자율적인 논리 속에서 일괄로 논의될 수 없고, 오히려 자본의 논리야 말로 예술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제약하기 때문에 양질의 문화, 예술을 생산, 보급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보다도 국가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세계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져 문화를 공유하는(그러나 오히려 미국 문화의 큰 흐름에 흡수되어 버릴 수 있는) 시기일수록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입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유한 역사를 지닌 각 지역의 특수한 문화를 인정하고, 독자성과 자율성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을 통해 문화의 균등한 발전을 이루어 우리나라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차이에 대한 존중과 서로 다른 가치, 믿음, 생각을 가진 개인과 집단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공존 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프랑스 문화예술,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 한길사
<프랑스 문화와 문화정책> 공주대학교 출판부
<샤갈 몽상의 은유>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 서울대학교 불어문화연구소
<프랑스 문화읽기> 학문사
<최연구의 프랑스 문화 읽기> 중심
<샤갈> 창해 ABC북
네이버 백과사전


아~ 그동안 나를 그토록 압박하던 프랑스 문화와 예술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를 드디어 마무리했다! 주제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어려운 거 알지? 프랑스 문화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ㅠㅠ
내가 프랑스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야지;; 마감이 오늘(금요일)까진데 수요일까지 고민하다가 점심 먹는 도중에
번뜩! 떠오른 거야~ 근데 자료 구하기가 정말 힘들어서 (도서관은 훨씬 전부터 프랑스에 관련 된 책이라면 모조리 대출중) 책하나 구할려고 강남역 주위 서점 다 돌아다니다가 겨우 구하고;; 교보문고에서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노트에 옮겨적고;; 마감 바로 전 날 극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책을 범진이를 통해 빌리고 (서울대 도서관 짱!)
암튼 정작 글 쓰는 건 이틀 밖에 안 걸렸는데(물론 사걀에 대해선 그 전에 공부해둬서v) 주제 정하는 거랑
자료 구하는 게 장난 아니게 힘겨웠지 >_< 어쨌거나 짜잔! 이렇게 잘 마무리 했다네~ 어때? A+ 받을 만 해? ㅋㅋ  
(쫌 많이 길지만;; 읽어주면 고맙지 흐흐)

댓글(7)

  • 2004.11.05 21:49  Reply
    응ㅋㅋㅋㅋ(좋아좋아)

    댓글 수정 삭제

  • 2004.11.05 22:52  Reply
    내가 왜 현대미술론에서 ( )를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겠다..하긴 미대생은 그림을 그린다고...(누가 모래..ㅋ)
    교직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를 아주 힘들게 A4'3장' 써내고 자책했던게 바로 지난주였는데 너 이건 나를 두번 죽이는 거야..모래.

    댓글 수정 삭제

  • 2004.11.05 23:34  Reply
    오- 수고했어!! ㅎㅎ 멋지구리구리~~

    댓글 수정 삭제

  • 2004.11.05 23:53  Reply
    완전 멋진데요- 오늘 저두 레폿냈는데 참...민망해지는 ㅋㅋ

    댓글 수정 삭제

  • 2004.11.06 00:17  Reply
    하하 잘 썼다 형 ㅎㅎㅎ 노력한 보람이 있네요 ㅎㅎㅎ

    댓글 수정 삭제

  • 2004.11.06 00:22  Reply
    ㅎ ㅓㅎ ㅓ 글좋음! 그림도 너무 색감이 예쁨 굿모닝파리 샤갈전에서 보고 참 귀엽다
    느꼈엇는데 ㅎㅎ

    댓글 수정 삭제

  • 2004.11.06 11:00  Reply
    너도 발표 준비 화이팅!

    ㅋㅋ 쌩큐~

    구하기 힘든 귀한 책 도움이 많이 되었어! ^^

    흐흐 고마워~ 오 드뎌 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구나!

    고마워~ 너도 면허 딴 거 다시 한 번 축하~

    영리다 ^^ 그런 걸 데포르마시옹이라고 한데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확대하거나 변형하여 묘사하는 표현법) 나도 완전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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