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3일 9시.
혜빈이를 만났다.
예정일을 3일 넘기고 병원에 갔는데도 선생님은 며칠있다 오라 하셨다. 여러모로 체크해 봤지만 나올 기미는 없었다.
난 왠지 나올 것 같아 오빠를 상해로부터 부르고 밥도 아주 든든히 먹었다. 두부반찬을 추가해가며 제육덮밥을 산만큼 쌓아 뚝딱 해치웠다.
친오빠와 병원 주위를 배회하며 남편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경하며 수다떨며 마시며.
그러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남편님 오시고 지금 마시면 태아에게 큰 영향은 없지 않을까 - 하며 (자신을 위로하며)
열달동안 먹고 싶었던 커피우유 500ml를 시원하게 원샷하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담당 선생님도 내일 아침에 만나요- 하고 가셨지만 7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분만 준비가 갑자기 20분 만에 길이 열려
3.65kg 혜빈이가 띠요ㅕㅇ- 하고 나타났다.
원래 뻣뻣하거나 한 체질이 아니기도 했지만 마지막 한달동안 했던 걷기운동과 스트레칭 효과도 톡톡히 봤다 생각한다.
물론 여러 친지분들이 내가 기도 많이했다 앞 다투어 말씀하셨지만
어쨌든 모든건 하나님의 은혜로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왠일인지 두려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기대감만 부풀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귀여운 인형같은 아가가 내게로 온 줄만 알았다.
혜빈이가 황달로 입원을 했는데 수치(첫 내원당시 수치가 25를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가 너무너무 기절하게 높아서 핵황달임을 의심받고
피를 전부 빼고 새로운 피를 집어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의 마음이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울었던 것 같다.
위 사진이 일주일 입원 그리고 퇴원 직후였는데 모유수유를 고집하느라 황달 수치를 점점점점 더 올렸던 것이었다.
황달일 때는 수유를 열심히 해서 순환을 시키고 간기능을 정상화 해야하는데 혜빈이는 모유수유가 너무 어려워 혼합을 하다
분유만 먹으려해서 두려운 마음에 마음을 굳게먹고 모유를 계속 고집하며 굶겼고 내 방의 형광등이 일반의 서너배는 밝은 너무나 강한 것이었기에
어두 컴컴한 환경을 주로 만들어 두었는데 황달일 때는 햇빛을 많이 쬐어야 했다. 황달치료는 광선이랑 체내수분보충 만으로도 거의 회복이 되는 것 같다.
산후도우미 아주머니를 3번 바꾸었는데 정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경험도 없고 딱히 주위의 들은 얘기도 없었는데 결국 모든건 많은 정보와 주장 속에 엄마의 결단과 방침이 곧 일관되게 바로서야 했다.
게다가 혜빈이가 병원 퇴원후 약 일주일간 밤낮이 바뀌어 밤만 되면 1분도 안자고 울기 시작하는데 정말 겁에 질려
불을 꺼도 불을 켜도 안아줘도 노랠 해줘도 우유를 줘도 몰해도 하염없이 울어댔다. 온 힘 다해 우는데 정말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해가 뜨고 일고여덟시가 되면 자기 시작한다.
지금생각하면 고 며칠 못 참았을까. 모든건 그렇게. 그 상황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나고나면 정말 너무나 짧은.
아웅대는 나는 너무나 약한.
아직도 그땔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병원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충격이 컸으면 그랬을까 하는 짐작이 든다.
몇명 의사들의 오진과 실수와 고집 때문에 이렇게까지 된 거였다. (처음 두 번 병원을 내원했을때 모두 황달이 아니라고 해서 종합병원을 갔다. 근데 거기서도 내가 하지 말라고 했던 약 먹여서 기계에 집어넣는 검사를 했다! 정말. 으휴)
말도안되게 BCG주사도 자국이 부풀어 오르는걸로 맞았다. 맙소사!!
겨우 우겨서 MRI 안찍은게 다행! 정말!! 속상해
좌충우돌 그렇게 저렇게 한달이 되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우유를 먹고자던 습관마저 접어버리고 쌔근쌔근 자는 혜빈이가 얼마나 고맙던지!
정말 우리 딸이 다 큰 것만 같았다. 크크
무엇보다 3시에 깨기 직전! 먼저 일어나 유축을 하고 있는 날 안쓰럽게 보시던 엄마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해방감이 더 컸다.
두 달이 되니 쎌카도 찍었다. 우는 혜빈이가 귀여워 찍었는데 남편님은 기절하신다.
생후 두 달이 되었을 때
밀라노에서 예지이모가 날아왔다. 피렌체에서 안고 온 보넷과 함께.
한땀한땀 놓인 수는 사랑스럽기 그지없었고 혜빈이는 곧 이 아름다운 보넷을 착용하기 어렵게 커버렸다. (머리가. 흑흑)
예지이모 온 김에 인형놀이를 시작하는데 혜빈이는 정신없이 반항했다.
아니 대체 왜.? 이렇게 귀여운 스타킹도 신겨주는데!
손을 보니 놀라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치만 이쁜이모 재롱에 금새 웃음이 : )
모자가 작아지기 전에 열심히 씌웠다. 감기라도 걸릴까 병균 옮을까 소심한 초보맘 외출할 일이 정말 없었는데 유일하게 병원 예방접종 가는 날, 모자를 꺼냈다.
쪽쪽이 공갈 젖꼭지를 안한다 안한다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끼워 재웠다. 옆 플라스틱 날개에 볼살이 눌려 항상 빨간 날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었다.
때가 되니 (8개월쯤일까) 자연스레 자기가 안빠는 공갈이를 나는 또 왜그렇게 고민하며 떼려했을까. 초보맘의 마음은 늘 모든게 근심 잘하려는 욕심이었다.
100일 즈음 유아세례를 받았다.
우린 새생명교회 첫 유아세례자 였다. ㅎㅎ
이렇게 저렇게 백일이 지나고 때마침 내 생일을 맞고 상해로 돌아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뱅기를 탄 혜빈. 쿨쿨 잘잔다. 별탈없이 가서 일까.
아기가 있으면 비지니스는 눈치를 안보고 이코노미는 눈치가 많이 보인다는데 여러번 실험결과, 똑같다. 사실 상해는 비행시간이 워낙 짧아서. 뭐.
짱구라인은 점점 발달되어 갔다.
나들이 갈 때 보이는 혜빈이의 오동통한 발과 다리가 너무 좋았다.
귀엽게 자고있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아기가 있다는게 참 행복했다.
정말 그랬다. 사랑해 혜빈.
지금보면 왜 그때 더 아기일 때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혜빈이와 함께하며 양보하는거 희생하는거 내어주는걸 정말 많이 배웠는데 일방적인 사랑이 뭔지. 깨닫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았던 일방적인 그 사랑.
너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 나는 네 엄마이기 때문에 널 사랑한다는 것.
너도 나도 주인공이 되려하는 이 시대 가운데
주연이신 하나님을 빛내는
조연으로 살아감을 기뻐하고
복음 전하는 그 고귀한 사명을 위해 혜빈이에게 허락하신
은사 소유 건강 시간들을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쁨으로 돌려 드리자.
사랑해 조혜빈.
09년 7월 일기_
네 존재만으로 행복한 날 보며 하나님 독생자 예수 왜 이 땅에 보내셨나 생각해 본다.
네가 지금처럼 품안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내가 널 보호하고 감싸는데 한계가 너무나 많다는 걸 깨달았을 때. 역시 은혜로 살아감을 고백했다.
오동통 조혜빈을 안고가다,
아이쿠- 부딪쳤다.
하지만 혜빈이는 해맑게 커주었고
네가 천사인 줄만 알고 지내던 내게
반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한결같이 널 지지해 주는 아빠의 사랑 덕에
넌 언제나 행복하고 예쁘게 자랐지.
그치만 난 그때마다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빠와 딸이 아주그냥 찰떡처럼 붙어서 행복하게 웃고 있으면.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열심히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혜빈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때론 안쓰럽기도 하고
중요한건 참. 감사하다는 것.
벌써 12월이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왔다.
더 풍성하고 즐거운 감사한 성탄을 맞았다.
다행히 사진찍을 때 빼고는 가만히 있어주고 기다려준 덕에 2시간 남짓 평화롭게 밥을 먹었다.
중국은 성탄절이 휴일이 아니라서 25일 브런치나 식사를 가면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그들은 쉬니까.
2010년 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잘 먹으며 지치지 않고 성장 상승 곡선을 그리던 그녀도 한살이 되어간다.
그리고 우리도 두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
상하이에 새로 오픈한 페닌슐라는 조금 답답한 내부말고는 프랑스 식사도 베리베리 굿.
전체적인 모든 서비스와 발렛 등등 음. 오빠에게서 오랜만에 듣는 만족스런 평가.
나는 옛날 그 아코디언 철조망 엘리베이터에 감격.
지금은 또 다들 서로 좋아지고 있으니 모.
하나님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며 변치않고 사랑하게 지켜주세요 늘 기도하는 남편님.
정말 사랑이 식는다면 모두가 너무나 불행할 것 같다.
아침을 먹고 혜빈이가 없어져서 보면 늘 창가에 기어가서 바깥세상을 하염없이 구경한다.
임신을 하고 출산과 육아라는 낯선 세상에 들어서니
난 가끔 그런 말을 했다.
아 이렇게 늙는구나.
신랑이 자기도 그럴 때가 있었다고 하며 말해줬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을 닮아가게 될텐데. 지금보다는 더 닯아있을 모습이 기대되지 않냐고.
그 말에 끄덕이며 나의 철없음을 삼켰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첫번째는 하나님을 알게하심과
두번째는 사랑하는 가족을 허락하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