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아줌마가 된 로망에 빠져 소고기 두부 전골도 끓여대며 하루하루 러블리로 지냈다.
발렌타인 화이트데이도 지나고
부활절도 지났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와중에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결혼했단 말처럼 하루하루 더 사랑하며 지냈던 것 같다.
내 생일도 지나고
첫번째 임신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가서 병원도 다니고 가족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시아버지께서 개척하시고 입당예배 때 친정 식구들과 찍은 것.)
추석도 다가오고
시아버지 생신때는 임신 초기에 배워둔 떡케익도 만들었다.
한국에 있다가 상해로 돌아올 때는 언제나 즐겁다. 사랑하는 남편과 편안한 보금자리가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또 다시 아줌마의 삶에 빠져 살림을 즐기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렇게 지냈다.
사실 임신을 하고 내 인생에 다시는 임신은 없다- 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부터 아이는 많이 많이 낳고 싶다고 하던 내가 말이다.
입덧도 힘들고 내 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게 불편했다. 그래서 고작해야 간단한 그림이나 동양화를 배우거나 요리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20주가 되고 나니, 거짓말처럼 날아오르는 내 몸이 너무 신기하고 살 것만 같았다.
남편과 손잡고 하는 나들이는 늘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고
아침부터 밤까지 많은 예배과 기도회는 하나님 앞에 기쁨과 감사만 넘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병원을 갔다가 아기 성별을 알게 되었다. 중국은 성별을 알려주는게 불법이지만 우린 외국인 병원이었고 해서인지 알려 주셨다.
딸이라는 말에, 마음이 몬가.
시부모님이나 남편에게는 아들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부담이 조금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가장 맞는 아기를 주셨을거라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그럼, 그렇겠지. 맞아.
공주님임을 감사하며 지내기가 무섭게 임신성 소양증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입덧이 끝나고는 폴 샌드위치 먹고 어마어마한 장염으로(하루 5분간격으로 화장실을 가야했다) 고생을 했고
임산부 중 2%가 걸린다는 소양증에 내가 영광스럽게도 그 극소수에 들게 되었다.
25년을 어느 곳 하나 아파 본 적 없이 살던 내가 임신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고장이 나니 여간 불편하고 적응이 안되는게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 모든걸 다 내려놓겠다고 하면서 건강하나 그것만은 끝까지 붙잡고 자유롭고 기분좋게 살겠다 한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견딜수 없는 전신 가려움때문에 곤두선 신경과 한숨으로 소양증 시절을 힘겹게 보냈다. 엎어진 나를 세우실 때 즈음 추수감사절이 왔다.
크리스마스도 왔다.
시간이 더디가는 것만 같았는데 그렇게 저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만삭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번의 발렌타인.
아직도 이런걸 만드냐는 엄마의 구박을 뒤로하고 상해로 보냈다.
언제나 기분좋은 당신의 꽃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참고로 신랑은 신라호텔 꽃을 애용하는데, 강추)
아마도 꽃을 받고 다음날인가 다다음날, 혜빈이를 만났다.
우아~ 혜빈이가 나중에 이 글을 보면 엄마아빠 사랑에 감사하며 효도하게 될 듯 ㅎ (가면쓰고 찍은 사진에서 빵터짐 ㅋㅋ)
예림이도 임신소양증 때문에 고생하고, 나는 긁지 못하게 감시하느라 고생했지;; 요즘은 몸이 어떠려나 모르겠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