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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1 11:00

사랑의 힘

조회 수 541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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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선생이라는 내 직업이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별 생각없이 한 말이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두고두고 남거나 어떤 때는 그들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대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난번 스승의 날에 병희에게서 온 편지에는 "선생님 말씀에 힘입어 저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인문관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제게 선생님이 '졸업하면 뭐하니? 넌 좋은 성생이 될텐데'라고 말씀하셨지요."라고 쓰여 있었다. 좋은 선생이 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병희이지만,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난 주 청첩장을 들고 찾아온 민우는 병약하다고 부모님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결혼한다고 했다. "선생님 말씀하셨죠.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줄 겁니다." 오래전 영문학개론 시간에 내가 브라우닝의 시를 가르치면서 결론적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그녀의 미소 때문에...그녀의 모습...그녀의/ 부드러운 말씨...그리고 내 맘에 꼭 들고/ 힘들 때 편안함을 주는 그녀의 생각 때문에/ '그녀를 사랑해'라고 말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나/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 변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사랑은/ 그렇게 잃을 수도 있는 법. 내 빰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픈 연민 때문에 사랑하지도 말아 주세요/ 당신의 위안 오래 받으면 눈물을 잊어버리고,/ 그러면 당신 사랑도 떠나갈테죠/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 사랑 오래오래 지니도록."

  민우가 청첩장에 인쇄한 이 시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이야기로 꼽히는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열애의 기록이다. 마흔 살의 노처녀이자 장애인이었던 엘맂자베스 배릿이 당시로서는 무명시인이었던 여섯 살 연하의 로버트 브라으닝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이면서 쓴 연시이다.
  
  현재는 문학사적 위치가 남편의 명성에 가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그녀는 남편보다 훨씬 유명한, 워즈워스의 뒤를 이을 계관시인의 후보로 꼽히는 시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재기가 뛰어나 네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던 그녀는 이미 열 한 살 때 '마라톤 전쟁'이라는 4권으로 된 서사시를 발표했다.

  유복한 가정, 아름답고 전원적인 환경 속에서 시재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던 배릿의 소녀 시절은 행복했다. 그러나 열 다섯 살 되던 해에 그녀는 말에 안ㅇ장을 얹다가 척추를 다치고 다시 몇 년 후에는 가슴의 동맥이 터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1844년에 출반된 '시집(Poems)'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젊은 시인 브라우닝은 1845년 1월 10일 지금은 유명해진 다음과 같은 대담한 편지를 쓴다. "배릿영, 당신의 시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합니다. 당신의 시는 내 속으로 들어와 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온 마음 다해 그시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당신도 사랑합니다."

  그 해 봄 그는 그녀를 방문하고, 그 후 그들이 결혼할 때까지 약 2년 동안 나눈 연서만 해도 두꺼운 책 두 권에 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이미 딸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고, 두 연인은 브라우닝의 친구 한 명과 엘리자베스의 하녀만이 참석한 가운데 비밀결혼식을 올리고 엘리자베스의 건강을 위해 기후가 따뜻한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것에서 브라우닝 부부는 활달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사랑의 힘은 생명의 힘까지 북돋아 그녀는 1849년에 아들을 순산했고, 15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후 1861년 6월 29일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아마도 민우를 가르칠 때 내가 이런 브라우닝 부부의 사랑이야기를 해 주었었나 보다. 사랑의 힘을 믿는 민우의 앞날에 행복과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절실히 소망하며 나는 결혼 축하카드에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또 다른 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를 적어주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방법을 꼽아볼게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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